직장인이 가장 시간을 많이 소비하는 일은 회의일 겁니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회의를 하지만 효율적이고 건설적인 회의는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회의에서도 꼰대들의 지독한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바로 회의의 독재자 꼰대 상사 때문입니다. <꼰대 전상서 9편>은 바로 회의를 회의하도록 만드는 꼰대 상사에 대한 것입니다.
1. 회의의 독재자
1.1. 본부장의 질타
본부장: 박 팀장, 사업계획서 읽어 봤는데……
박팀장: (무언가 싸~한 분위기를 감지한다. 탁자 위에 널브러진 빨간색으로 난도질 당한 사업 계획서가 언뜻 눈에 띄었다) 네, 본부장님.
본부장:(서류를 툭 던지며) 일단 도전적인 느낌이 전혀 없어. 겨우 5~6% 수준의 성장을 하겠다고 하면서 게다가 구체적으로 어떤, 그거 있잖아. How to에 대한 것도 전혀 구체적이지 않아.
박팀장: 지금 시장 상황이 5% 성장도 녹녹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저희 팀으로서는 도전적인 목표를 세운 겁니다. 본부장님도 잘 알고 계시지만, 중국 시장의 영향으로 타사의 매출 실적도 ~
본부장: (말을 끊으며) 됐고. 일단 최소 10%의 성장률을 기본으로 해서, 상세한 달성 방안을 이번 주 금요일까지 작성해서 브리핑해줘.알았지? 작년에도 부진한 실적으로 우리 본부의 숫자를 갉아먹었으면 알아서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벼룩도 낯짝이 있어야지. 나가 봐.
1.2. 팀장의 우유부단
회의를 끝내고 나오는 박 팀장의 안색은 어두웠다. 긴장과 당황의 기색이 가시지 않은 채, 다이어리를 내려 놓고는, 주섬주섬 챙겨 밖으로 나간다. 흡연을 위해 나가는 듯하다. 팀원들은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지만, 박 팀장의 발자국 소리는 선명하게 들었다.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팀장이 나가자, 다들 눈동자를 돌려가며 “왜 저래?” “또 본부장에게 깨졌나 보지 뭐” 묵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10여분 후 자리로 돌아온 박 팀장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들 회의실에 모이지?” 하며 한웅 큼의 서류를 들고 회의실로 들어간다.
영문없이 소집된 회의라 다들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가며 지정 좌석에 착석했다.적막의 1분여 시간이 흐른 뒤, 박 팀장은 입을 열었다.
박팀장: 지난 몇 달 동안 작성한 올해 사업계획서 관련 본부장 보고가 있었다. 그런데 세부 실행 계획 및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해 재검토하여 보고 하라고 하네? (한숨을 푹 쉰다)
김과장: 그만하면 충분히 검토되고 대안을 제시한 것인데, 현 시장의 흐름을 잘 읽고 계신지 의문입니다. 현장감이 있으셔야~~ (동조를 구하듯 팀장을 바라본다)
박팀장: 성장률의 하한선을 10%로 하여 작성하라는 거야. 내 원 참나? 10% 성장이 뉘 집 강아지 이름인가? 할 수 없지. 우리의 중지를 모아서 계획을 세워야 하니까, 허심탄회하게, 제로 베이스로 사업 계획을 논의해보자고.그리곤 팀원들을 쭉~ 돌아 본다. 팀원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무언가 다이어리에 메모 아닌 낙서를 하고 있었다)
김주임:팀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룹 계열사와 협업을 통한 통합 제안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룹의 지향점이기도 하고요. 공동으로 힘을 합쳐야 우리만의 시너지와 경쟁력, 차별성을 창출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과장: 김 주임, 신입이 뭘 안다고 이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말을 하고 있어? 그 방안은 재작년에도 시도했지만 계열사 간 이해 상충으로 결렬된 것은 알고 하는 이야기야?
김주임: 그런 사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박팀장: (말을 자르며) 그건 됐고. 그건 김과장 이야기가 맞아. 본부장님도 독자적인 자생력을 강조하시고,타사의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야. 다른 회사 임원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시는 것은 좀 그렇지? 자, 다른 사람들도 의견 한 번 내보도록. 그래 이 대리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이대리: 팀장님, 빅데이터를 이용한 UX를 수집하고 그것을 베이스로 상품 판매 전략과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 같습니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김과장: (말을 자르며) 그런 원론적인 이야기 말고, 좀 쌈박한 아이디어는 없나? 이 대리가 이야기한 어프로치는 마케팅팀이 전담해서 해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박팀장: 그건 그렇지. 근데 그 빅데이터 라는 것을 이용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한다는 거야? 이 대리가 책임을 지고 이 프로젝트를 맡아서 해보는 건 어때?
이대리:제가 지금 맡고 있는 프로젝트가 여러 개여서, 제가 하기에는 벅찹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우리 신예 김 주임에게 맡기는 것은 어떨까요?
김주임: 그게 제가 맡기에는~
박팀장: 그렇지. 신입이 하기에는 벅찰 수도 있겠네. 자, 다른 좋은 아이디어 있는 사람? (회의는 그 후 40여분 동안 계속 되었지만 박 팀장의 거래선 점심 약속을 이유로 중지되었다)어떻게 하지? 모두 한 개씩 좋은 아이디어를 내일 까지 내보도록. 내일 9시에 회의를 다시 갖도록 하고.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팀원들은 모두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런 말없이 각자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언제까지 무한 도돌이표 같은 회의를 반복하고 있어야 하는 건가’라는 “회의 회의론자”들이 되어버렸다.
2. 니 마음대로 하세요~
픽션이지만, 논 픽션에 가까운 회의 광경일 것이다. 회의 안건에 대한 사전 인지 없이 갑자기 소집되었다.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보라는 것은 브레인스토밍을 하자는 건지, 브레인 토쳐링 (torturing, 고문)을 하자는 건지?
플랜비디자인 최익성이 정리한 회의의 유형을 살펴보자: ‘툭하면 회의’, 준비 없는 ‘즉흥적 회의’, 불필요한 참석자가 가득한 ‘자리 채우기 회의’, 회의인지 보고인지 헷갈리는 ‘보고형 회의’, 혼자 발언하는 ‘확성기형 회의’, 토론은 없고 공격만 있는 ‘저격형 회의’, 반대의견 제시 없이 대세 ‘동조형 회의’, 침묵과 무반응의 ‘모르쇠 형 회의’, ‘결론 없는 회의’, 결론을 내도 생각이 다 다른 ‘동상 이몽형 회의’, 회의만 하면 뭐 해?실행 없는 회의’. 회사원이면 누구나 수긍할 만한 우리들 회의의 유형들이다.
이런 회의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다. 일단 조용하다. 그리고 대화가, 웃음이, 자발성이 없다. 지명 당하지 않은 이상 발언을 자제한다. 회의 참석자들 사이에 아이 컨택이 없다. 참석자들은 본인의 다이어리나 노트와 연애 중이다. 대상이 없는, 뜻 모를 연애 편지를 쓰고 있다.
시간이 상당히 흘렀음에도 무엇을 했고, 어디로 가고 있고, 어떻게 하자는 건지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한 두 사람의 원맨쇼 내지는 스탠딩 코미디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기에 억지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소수의 동원된 관객만이 있을 뿐이다. 때로는 폭탄 돌리기 게임도 한다. 프로젝트나 새로운 업무에 대한 주체를 떠넘기고 있다. 용기를 내어 이야기 한 발언을 무 자르듯이 잘라 버린다. 그 이유는 “뭘 모른다”는 이유다.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그 증상은 더 심해진다. 종국에는 본인이 제안하고 본인이 승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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