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는 조직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업무 루틴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한국의 회의 문화는 개선사항이 많아 보인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고 참여형의 회의문화를 구축할 수 있을까? 일방통행 방식의 회의 문화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회의 (會議)를 회의 (懷疑)하게 만든다.
1. 무슨 말인지 알지?
한때 모셨던 한 상사 분은 “무슨 말인지 알지?” 라는 투사를 즐겨 사용하였다. 그 분의 설명은 짧았고, 이 말을 항상 말미에 덧붙이곤 했다. 이해가 안 돼도 긍정의 고개 끄덕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와 동의를 강요하는 그만의 독특한 언어였다. 소심한 작은 복수의 심정으로 나도 그리 해 보았다. 그에게 아주 짧게 설명하고는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로 말을 맺었다. 회의 참석자들은 박장 대소했다. 그 분도 그러했다.
2. 바람직한 회의란?
그러면 ‘회의 회의론자’를 만들지 않는 “바람직한 회의는 어떤 것일까?” 그 답을 진정한 프로 선수들의 집단인 광고 대행사의 아이디어 회의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상호 프로라고 칭한다. 프로의 세계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궁금했다. 어떻게 그들은 15초의 짧은 시간에 강렬하고 임팩트 있는 메시지를 만들어 내는가 하는 것이 알고 싶었다. 그들의 회의 과정을 김민철 작가 (TBWA 카피 라이터)가 쓴 <우리 회의나 할까?]>서 엿볼 수 있었다. 유명 카피라이터이자 작가인 박웅현 (ECD: Executive Creative Director)의 추천사를 살펴보자.
회의실에서는 화학작용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 사람이 가져온 아이디어는 다섯 개다. 저 사람이 가져온 아이디어는 일곱 개다. 그런데 그중에 네 번째 아이디어가 좋다. 그걸로 하자. 이 것은 물리 작용입니다. 이 사람이 어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 사람이 오늘 이런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그걸 합쳐보니 뭔가 새로운 게 나왔다. 이것은 화학 작용입니다. 물리 작용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하지만 화학 작용은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중략) 밍밍한 물방울 하나하나가 모여, 기어코 강렬한 한 잔의 위스키로 증류되고 맙니다. 그 기적 같은 증류가 일어 나는 곳, 바로 회의실입니다”
그의 회의실에 대한 정의는 우리 일상 회의실에 대한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단순한 미인 대회의 수준을 넘어 밍밍한 물방울들이 증류되고, 화학적 성질이 변화되어, 가치를 창출해 내는 생산지이자 성지 (聖地)였다.
- 저자
- 김민철
- 출판
- 사이언스북스
- 출판일
- 2011.11.18
3. 7대 회의 원칙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그들의 7대 회의 원칙이 실려있다.
1. 회의에 지각은 없다. 10시 3분은 10시가 아니다.
2. 아이디어 없이 들어오는 것은 무죄, 맑은 머리 없이 들어오는 것은 유죄.
3. 마음을 활짝 열 것. 인턴의 아이디어에도 가능성의 씨앗은 숨어 있다.
4. 말을 많이 할 것. 비판과 논쟁과 토론만이 회의를 회의답게 만든다.
5. 회의실의 모두는 평등하다. 누가 말했느냐 가 아니라, 무엇을 말했느냐 의 문제다.
6. 아무리 긴 회의도 한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7. 회의실에서 나갈 땐 할 일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다음 회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회의와는 차이가 크다. 어쩌면 정반대이다. 즉, 말은 될 수 있으면 자제하고, 마음의 문은 닫고, 직급에 따라 발언 빈도가 정해 지며, 회의 시간은 엿 가닥처럼 늘어지고, 회의가 끝난 후에 해야 할 일들을 모르는 우리의 일반적인 회의의 모습과 비교하면 말이다.
계속해서 김민철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불완전하다는 태생의 한계를 인정하고 불완전 속에 숨어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찾으려 눈에 불을 켜야 한다.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문득 가능성이 엿보이는 자그마한 씨앗이 보인다. 회의실 안의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그 씨앗을 흙에 고이 심고 물을 주고 햇빛을 쪼여주고 진심으로 대하여 성심 성의껏 돌보기 시작하면 마침내 조그마한 새싹 하나가 자라나는 것이다” 그들의 회의는 조그마한 씨앗을 같이 발견하고, 같이 키워 새싹을 키우는 공동 작업이었다. 그들의 회의는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잘하지 못하고 있는 브레인스토밍의 결정판이었다. 전원 참여, 인정, 동참, 그리고 책임감 있는 태도를 엿보인다.
4. 회의 수장의 역할
그리고 회의 수장의 역할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역할은 패실리테이터 (Facilitator), 즉 적극적 개입 없이, 마치 투명 인간처럼 회의를 이끄는 역할이다. 참여를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반영하고, 키워드를 발견하고 정리하는 그런 역할이었다. 또한 누구나 입을 열고 크게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전부이다. 집단 지성의 힘이 발휘되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같이”라는같이” 라는 두 단어였다. 누가 원래 아이디어의 오너인지를 알지 못하고, 묻지도 않는다. 누구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우리의 아이디어이고, 같이 머리 싸매고 만든 거다. 같이 만들어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모든 것이 공동 작품인 것이다. 공동의 책임이고, 같이 최선을 다해 하나의 제안서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농담이 있다. 우리나라 국민 중 반이 경부 고속도로를 건설했다고. “내가 경부 고속도로를 다 만들었다” 그것도 ‘다’ 라고 이야기한다.모래 등짐을 실어 나른 것뿐인 데도, 함바집을 운영했음에도 말이다.
前 제일기획 김 홍탁 마스터는 이렇게 이야기한다.우리는 어떠한 광고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이야기하지,내가 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달라도 많이도 다른 것이다.
12척으로 330척의 일본 해군을 상대해야 했던 이순신 장군. 23전 전승 세계 신기록 보유자. 혼자 일본 전투 선의 특징을 파악하고 울돌목의 조류를 파악하며 전략과 전술을 수립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성웅 이순신은, 명량해전을 앞두고 장군들을 모아 회의를 소집하여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았을까? “곧 일본 해군이 밀려들 텐데, 어떻게 전술을 수립할 건지, 기탄없이 자유롭게 아이디어와 의견을 모아 봅시다. 브레인 스토밍 해봅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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