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두 견딜만하다
나이가 들어가며 삶이라는 것이 이렇게 좌절의 연속인 줄은 몰랐다. 스멀스멀 다가오는 육체적, 정신적 변화에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새치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가닥씩 뽑아 대다가, 그러려니 포기하며 받아들이거나,염색을 하면 된다. 조금 귀찮을 뿐이다. 가려움 증상 ‘그까이 것’, 견디면 된다.
가까운 곳의 글씨가 흐리게 보이기 시작했다. 노안이 왔다. 안경을 벗고 보거나, 안경을 이마에 걸치고 보거나, 책이나 서류를 멀리 떼고 보면 된다. 다 초점 렌즈가 장착된 안경을 쓰면 해결된다. 그러다가 돋보기안경을 쓰면 된다. 별 문제 아니다.
탈모가 시작된다. 무심코 어느 순간 정수리가 횅하게 되었음을 발견한다. ‘소갈머리’ 없는 사람이 되는 거지. 이마가 예전보다 넓어지고, M자형의 머리가 되더니, 결국은 대머리라는 운명을 접하게 된다. 방법은 여러 가지 있지. 왼쪽이나 오른쪽 옆의 머리를 길게 길러 넓게 덮으면 된다. 지금은 작고하신 원로 배우 김희갑의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어느 지인이 이러더군. 이런 분들의 집을 터는 최상의 방법이 있단다. 아주 작은 가위 하나면 충분. 그 귀하고 귀한 긴 머리를 자르겠다고 하면 된단다. 저항없이 원하는 물건의 절도가 가능하다고 하더군. 또 다른 해결책은 가수 설운도나 배우 이 덕화처럼 쓰면 된다. 모발~모발~ 덮으면 된다. 아니면 나무만 심는 것이 아니라 과학 기술의 힘을 빌어 모발을 심는 방법도 있다. 모발 한 개에 2~3,000원이라나? 무척 아프지만 순간의 고통을 참으면 된다. 아니면, 깨끗하게 밀어 버리면 된다.
TV나 영화를 볼 때 울컥하며 눈물 흘리는 일이 잦아지더라. 갱년기에 접어든 거지. 근데 여성들처럼, ‘백수오’나 ‘호르몬 제’ 등 치료제가 남성용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성용 갱년기 약은 왜 개발되지 않는가? 떳떳하게 알리고, 나 여기가 아프다고, 공개적으로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치료받고 싶은데 말이다. 그것도 그냥 숙명처럼 그 시기를 스스로 견뎌내면 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고개 숙인 남자'가 된다. 성기 (性器)가 아닌 요기 (尿器)로 변하게 되더라. 즉 소변보는 용도 이외의 다른 용도가 없어져 버린다. 사용 불능의 상태가 되어 버린다. 이것 또한 기회가 없지. 일시적으로 고개 들게 하는 순간 변신 또는 회복의 방법은 있다.
건강진단을 받으면, 매년 임계치에 도달한 각양각색의 항목들이 늘어가더라. 관리를 하라는 출력된 텍스트 메시지가 주는 위압감이 무겁다. 어떻게 하겠는가? ‘만병의 근원은 인간의 욕망에서 기인하고, 그 욕망을 조절하지 못하는 존재가 인간인 고로, 의사가 시키는 대로 약을 먹어가며 욕망을 즐기라’는 현자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한 움큼씩,알약의 숫자는 늘어만 간다. 만성 질환이라는 것이 근본적인 치료는 없지만, 그래도 약으로 달랠 수는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라는 '자아'는 재활용이 안 되는 ‘용도 폐기’ 또는 '유효 기일이 며칠 남지 않은 우유’처럼 다가온다. 정년이 스멀스멀 다가온다. 구조 조정, 임금 피크제, 명예퇴직, 노후설계, 걱정해야 할 일들이 산적하다. 혹자는 그 정도 회사를 다녔으면 호상이라고 한다. 2018년 직장인들의 평균 퇴직 연령이 49세라니 말이다. 그러나, 토끼 같은 자식들을 대학 졸업 및 결혼까지는 시켜야 최소한의 짐을 덜어낼 수 있을 텐데. 여우 같은 마누라는 현재 삶의 수준에서 조금의 하향도 용납하지 않고 있는데.
견뎌 보라고, 누구를 위해서 인지는 모르지만. 그래 나만 견디면 된다. 그냥 회사에서 견디면 된다. 용도 폐기 때까지 단 한 사람만, 시체 말로 '나만X 팔리면'된다. 후배를 위한 용퇴라는 것은 허울이다. 그냥 눈 찔끔 감고, 임금 피크제를 받아들이고, 정년까지 버티면 된다. 정년까지 월급은 감액되나, 자신을 소개할 명함이 있고, 정규직이고, 출근 할 사무실이 있고, 어느 정도의 복리 후생은 보장된다.후배들의 눈치는 무시하고, 본인의 자존심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된다. 회사 내에서 '퇴적 인간' 또는 '잉여 인간'이 된 듯한 느낌이 들 거다. 예전에 어르신들이 이야기하던 뒷방 또는 골방의 구닥다리 늙은이가 된 듯할 거다. 이것 또한 가족 중 유일하게 한 사람, 나만 그러하면 해결된다.
2. 그러나, 이것만은... 치료불능, 회복 불능 질환 그리고 꼰밍아웃
그러나 치료 불능, 회복 불능의 질환이 있다. 가슴에 새겨진,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처럼 낙인찍혀있다.죄인이 된 기분이다. 고립무원 (孤立無援)이다.孤立無援) 모두들 손가락질을 하는 듯한 느낌이다. 깊은 수렁이나 진흙 속에 빠져버린 듯하다. 바로“꼰대”라는 병에 걸린 것 같고, 그 병에 걸렸다고 한다. 플루 같은 유행성 질환인 듯, 모두들 피하는 것 같다. 아직 까지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라고 한다.
그러니, 깨끗이 인정할 건 인정하고자 한다. 소위 말하는 ‘나 꼰대 아니라는 낫 (not) 꼰대’가 아니라 ‘나 꼰대 맞아요. 나 꼰대라고요’라고 ‘꼰밍아웃’을 하고자 한다. 불치병이라는 사실에서 엄습하는 공포는 있지만, 스스로 고해성사를 하고자 한다. 하지만 “나꼰대” 로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는 하고 싶다. 내 이야기에도 조금은 귀를 기울여 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나도 멋지고 시크한 상사나 멋진 리더가 되고 싶다.
3. 나도 할 말이 있다네
근데 말이다. 우리들은 그런 상사, 리더를 본 적도, 리더십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다. 그냥 몸으로 부딪히며 버텨온 것뿐이다. 또한 변화 속에 새로운 세대들을 이해하고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운 적도 없다. 우리도 선배 세대들에게 한 때는 신세대, 유별난 세대가 출현했다고 손가락 질을 받았다. 우리가 보고 배운 것은 당신들이 느끼는 것보다 더 심한 꼰대 짓을 보고 견뎌냈다. 그냥 받아들였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우리에게 다른 모습과 태도와 사고를 요구하는 것은, 마치 국민학생, 아니 초등학생에게 미분 적분 문제를 풀라는 것과 같다. 혹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현재의 수능 수학 문제를 풀라고 하고, 성적이 그것밖에 안되냐고 비웃는 것과 같다. 현재의 수학 교과 과정을 배운 적이 없다. 하지만 우리도 우리 시대의 수학 문제는 열심히 그리고 능숙히 풀었던 존재들이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칸막이에 둘러 쌓이고 또는 방으로 들어가게 되지. 그럴수록 외로워진다는 걸 아시는가? 그리고 보이는 것은 일하는 자네들의 옆모습뿐이라는 걸.예전에는 직원들의 뒷모습이 보였지. 모르긴 해도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망원경 없이도 다 파악이 되었 다네. Age라는 영어를 그대로 발음하면 한국말로아재’가 된다는 아재 개그도 있더군. 다가가 아재 개그라도 던지면, 생경한 모습과 억지웃음이 메아리 되어 다가 오더군.
그리고 안타까워서 조언을 하면, 그런다며? “조언과 충고는 필요할 때 하라고. 쓸데 없는 오지랖은 거두어 주소서”라고 한 다더군. 자식 같아서라는 것은 거짓이지만, 후배를 위해 무언가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은 사실 이라네. 지름길을 알려주고 싶고, 보이지 않는 길에 이정표가 되고 싶은 의도는 알아주기 바라네. 무언가 가르쳐 주려고 하면 그것을 훈계로 받아들인다며? 우리는 무엇이든 빠르고 간결하게 “다나까”로 끝나는 말로 해야 된다고 배웠다.. 들어주고 기다려 주고 격려해 주고 실패나 실수를 용인해주고 하는 그런 것은, 우리의 조직 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다네. 그러니, 서론, 본론 생략하고 짧게 그동안의 경험치에서 뽑아낸 에센스의 결론을 이야기해 줌으로써,도움을 주려고 한 것이라네.
말투가 거칠고, 가치관이 고루하다고 하더군. 예전에는, 참 ‘예전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꼰대라며?, 거친 말투가 마치 마초의 상징이나 되는 것처럼,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시절도 있었다네. 가치관이라는 것은 시간이나 세월의 산물이고, 한 번 형성이 되면, 굳어져 바꾸기가 어렵다네. 공고히 쌓아 올린 성벽처럼, 동굴 속 깊은 어둠 속에서 나오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 수많은 양질의 선배들 모습을 목격했기에, 자네들은 그런 것들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했던 일들이,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도 조금은 슬프기도 하다. 딱지 치기 잘하던 동네 형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큰 딱지를 퍽퍽 소리 내며 넘겨 대던 그런 모습을 말이야. 자네들에게 그런 큰 형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감도 일조했으리라 믿는다네. 어쩌면, 자네 들로부터 약간의 경외감과 존경을 받고 싶은, 우쭐함을 느껴 보려고 그랬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더욱더,불쌍한 초인이 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뒤돌아 서서, 눈물을 뚝뚝 흘려 대는 덩치만 큰 거인의 모습이랄까?빠른 시대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도 많다네. 그 동안 배우고 무장했던 지식이나 정보의 유효기간이 이렇게 짧아질 줄은 몰랐다.
4. 나도 조심하고 있다네
많이도 조심하고 있다네. 말은 될 수 있으면 줄이고, 경청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네. 의도적으로 칭찬도 자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네들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해야 한다기에 책도 읽고 강연도 많이 들었다네. 최근에 한 영화를 보니, 말을 하려면, 상대방이 이야기한 후, 10까지 센 다음에 이야기를 하라고 하더군. 변화의 모습이 스스로도 낯설다.아무리 노력해도 그대들의 눈에는 '청바지 입은 꼰대'의 모습으로 비치어질 것이라는 것도 잘 이해하고 있다네.
리더십 교육을 받아 보면 요즈음에는 따뜻하고, 감성적인 멘토나 코칭 리더십을 요구한다고 하더군. 토닥거려 주고, 웃어 주고, 같이 걸어가는 리더의 모습. 좋아 보이지. 그런데, 정작 우리도 그런 멘토링이나 코칭을 받고 싶다네. 우리의 말을 들어줄 그런 사람은 우리에게 더 절실하게 필요할 지도 모른다네.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어내면, 그대들이 바라는 그런 이상적인 상사와 리더가 될 수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자네들이 즐겨하는 말들이 있지. “사랑해요”. 손 하트, 두 팔로 하는 하트, 겸양 스럽고 낯설다네. 생일 축하 노래 속에서의 ‘사랑하는 ㅇㅇ씨,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그 노래 가사도 조금은 낯부끄러운 것이 사실이라네. 우리로 말하자면 누군가에도, 하물며 부모에게도, 따뜻한 허그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존재들이라네. 그러니 자네 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포옹 또한 낯설다. 우리는 단체 사진 찍으며 하는 ‘파이팅’이나, 건배하며 하는 ‘위하여’라는 단체 행사 속 구호가 차라리 편한 느낌이다.
앞선 세대로 태어나, 나름, 그대들의 시각으로는 우리들의 시대가 풍요롭고 기회가 많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치열하게 산 것은 우리 세대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만 해도, 다른 옵션이나 선택이라는 것이 없었기에, 고시, 은행원, 교사, 회사원이라는 제한된 선택 속에서 경쟁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지금의 그대들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었다. 열심히 하면 무언가 될 것이라는 신념은 그때가 더 불확실했다.
부서 직원들이 뭉쳐서 사기 진작을 하는 방법은 회식 이외에는 잘 모른다. 배운 게 그것밖에는 없다. 그래도 회식이면, 북적대며, 웃음소리도 나고, 술에 취해 어깨동무를 하고, 거리를 비틀거리며 배회하고, 서로의 등을 쳐주던 그런 광경이 회식이고 단합의 장이었다.
5. 용서들 하시게나
용서들 하시게. 멋진 선배, 상사의 모습, 진정으로 그렇게 되었으면 한다네. 그러나, 이제야 걸음마를 시작한 듯하네.나이가 꼰대가 되는 이유만은 아니다는 생각을 갖고 나름 노력하고 있다네. 외워서 하는 유머가 여러분의 정서를 울리지 못한다는 것, 잘 알고 있다네. 그러나, 한 가지, 이러한 것도 그대들에게 다가가고픈 힘든 노력의 일부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네. 수많은 걸그룹들이 모두 같게 보이고, 그들의 노래가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춤도 배우려고 하지만 박치의 몸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네.
인정한다. 나 스스로가 꼰대라는 걸 말이네. 그 무엇 때문에 꼰대가 되었다는 것을 더 이상은 이야기하지 않겠네. 하지만, 나름 열심히 세상을 살아왔고, 그 속에서 살다 보니, 몸과 마음에 배인 것들이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 자네들처럼 거창하게 사회 시스템과 조직 문화 그런 것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도 숙명처럼 그냥 지고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노안이 오면 가까운 곳은 잘 보이지 않고, 멀리 있는 사물은 잘 보이게 된다. 아마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멀리 보라는 삶이 주는 지혜는 아닐지? 멀리 보는 연습을 많이도 하고 있다. 돋보기 안경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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