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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전상서 ⑥> 시월드, 꼰대 시어머니

by 괜찮은 꼰대 2025.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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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媤) 월드란 우리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를 말한다. 서양 사회만 하더라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우리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대신 그들은 사위와 장모의 갈등이 표면적이다. 이것은 어떤 문화의 차이일까?

 

우리는 귀한 아들을 장가보낸 시어머니가 새로 아들을 점령해 버린 며느리에 대한 적대적 관계에서 기인한 것이다. 대신 딸의 남편이 된 사위는 천년지객으로 장모에게 대우를 받는다. 서양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귀한 딸을 뺴앗아간 (?) 존재의 사위라서 그럴까.

 

이번에는 우리의 시어머니가 꼰대적 존재라는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꼰대 시어머니

원두막그리고 원시인 아빠

 

결혼 초 아내가 임신한 이후, 회사 내에서 나는두막이 아빠로 불리었다. 틀림없이 아들이라는 확신 또는 아들을 바랐던 마음이 강해서 일까?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두막으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니 태어날 아들의 이름은원두막이 되는 것이다. 혹시 혹시라도 딸이라면 이름을시인으로 하겠다고 했다. ‘원시인’. 결국 딸이 태어났지만, 시인으로 이름은 짓지 못했다. 딸 아이가 출생할 때 치명적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홍콩 근무를 발령받아 먼저 부임을 하였고, 아내는 산후조리 후 오는 걸로 하였다. 어느 새벽 전화벨이 울렸다. 처제였다. 출산을 알리는 전화였다. 그 때, 무심코 아들? 딸?” 을 물었다. 그리고 난 후 “산모는?”이라고 물었다. 질문 순서가 바뀌었 어야 했다. 두고두고 그 날의 실수를 되새겨야 했다. 삶의 중요한 지혜를 터득했으나, 다시는 그 지혜를 활용하지는 못했다.  

 

시집 보낸다는 것 그리고 시집을 간다는 것

 

그렇게 태어난 딸이 이제는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아내와 딸의 결혼을 이야기 할 때면, 뚜렷한 관점의 차이를 발견하곤 한다. 아내는시집을 보낸다는 표현을 쓰고, 나는시집을 간다라고 말한다. 주어가 다른 것이다. 부모가 시집을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보내는 것일까? 일단 딸의 배우자를 사윗감을 골라 주어야 한다. 그것도 적합한 조건과 자격을 갖춘 사람을 찾아 짝지어 보낸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일 게다.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일단,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 중대차한, 딸 본인의 일생일대 사건의 의사결정 주체가 되고 싶은 생각은 감히 없다. 전혀 없다.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 부모의 의지가 반영된, 자격 조건을 완비한 딸의 배우자를 찾을 자신 또한 없다. 결혼이라는 이벤트는 인간의 영역이 아닐 것 같고, 인연이라는 것이 다분히 작용할 것이라는 믿음에서도 그러하다. 어쩌면 신의 영역인, 운명적으로,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시집은 딸냄이가 선택하여 가는 것이다. 딸냄이가 주어인 것이다.

 

며느리 그리고 시어머니

 

딸은 언젠가는 결혼을 할 것이다. 제3자의 그 무엇인, ‘아내며느리라는 새로운 역할이 부여될 것이다. 시간이 또 흐르면엄마할머니라는 역할이 새로 주어질 것이다. 일차적인 단계인 한 남자의아내와 그 남자 어머니의며느리가 되는 것은 결코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 부부가 되어 두 사람의 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지극히 자신의 의지가 반영된 행위이다. 그러나 누구의 며느리가 된다는 것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는 사위와 친정어머니 사이가 많은 문제가 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시월드로 상징되는 골치 아픈 관계의 시작이다. 시집 시 () 자를 파자 (破字)해 보면 흥미롭다. 계집 녀 (女)(女) 자와 생각 사 () 자가 결합된 한자이다. 즉 여자가 신중하게 생각을 해 보아야 할 문제가 시집이라는 것이리라. 어쩌면 시어머니와 며느리 모두 깊이 생각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닐까? 고부 (姑婦) 갈등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선 시어머니는 갑자기 나타난 한 여인에게 극진하게 키운 아들을 빼앗겼다는 상실감에서 새로 들어온 며느리를 좋게 볼 수가 없다. 한 아들을 두고 그것도 동성인 여성 경쟁자가 출현한 것이다. 그리고 경쟁에서 일방적으로 뒤지고 있는 듯 느낄 수 있다. 곱게 본인의 슬하에서 키우던 아들이 새로 나타난 한 여인과 한 이불을 덮고 잔다. 어린 시절 엄마의 젖을 조물 거리며 잠들던 아이에서 말이다. 더 이상 본인의 소유가 아니고, 자의로 양도한 것이 아니라, 빼앗겼다는 상황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시월드’로 상징되는 우리의 고부 관계는 아직 까지는 일방적인 게임이다. 시부모를 모시고 살든, 명절 때나 어떤 이벤트에 시부모를 뵈러 가든 긴장감 있는 위계질서는 존재한다. 복종, 순종해야 하고, 지시를 따라야 한다. 특히 음식을 만들 때, 그러한 긴장은 극대화된다.며느리의 음식 만들기는 초보일 것이고, 시어머니는 적어도 30~40년의 달인이니, 며느리가 부엌에서 조리하는 것이 좋게 보일 리는 없다. 모든 것이 맘에 안 든다. 한 편 며느리의 국과 반찬에 어느 정도 길들여진 아들을 지켜볼 때, 부화는 끓어오른다.이 놈이 변했다’ ‘내가 어떻게 키운 놈인데’라는 분노도 함께 일어난다.

 

집밥의 정수를 보여줌으로써 아들에게 점수를 따야 한다. 상이한 생활환경 속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단시일 내에 적응을 하기는 무리도 있어 보인다.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남편이라는 한 남자를 선택한 것인데, 그 결과로 본인이 원하지 않았던 그 남자 어머니와의 새로운 관계 정립이라는 난제가 존재함에 당황한다. 일단 칭호가 엄마가 아닌‘어머님’이라는,생에 단 한 번도 써보지 못한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눈치가 보인다. 시댁에 다녀올 때가 되면 학교 가기 싫은 아이처럼 머리가 아파오고 울렁증도 생긴다. 시댁에 가면 시어머니는 남편을 아래위로 스캔한다.우리 아들이 마른 것 같다는 말은 마치며느리가 음식은 잘 챙겨주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동시 통역 된다.  시댁에 가면 변해 버리는 남편을 보면 울화가 터진다. 집에서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변신한 남편이 야속하다. 모든 행동과 말이 조심스럽다. 마치 시험 감독관의 날카로운 눈초리도 느껴진다.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는 눈치를 그렇게 주었건만, 남편은 모르는 건지, 알고도 그러는지, 집에 돌아갈 생각을 안 한다. 바리바리 챙겨 주시는 음식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마도 며느리들의 해방구는 남편의 해외 발령이 될 것이다. 회사 비용으로 외국의 공기를 호흡하고, 주거 공간이 그리고 아이 국제학교 학비도 제공된다. 오지의 경우에는 차량과 기사까지도 제공된다. 거기다가 가장 클 수도 있는 보너스로 한국 내 시댁 관련 모든 관혼상제 불참에 공식적인 면죄부가 공여된다.명절 때면 저희가 해외에 있어서 찾아뵙지도 못하고 죄송하다는 전화 한 통이면 된다. 울면서 나간 해외 근무가 끝나갈 즈음에 그들은 한 번 더 운다. 1년 더 근무할 수 없냐 고 말이다.

 

손자 손녀의 탄생 그 이후의 변화

 

힘의 균형 추는 손자, 손녀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변화하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는 며느리 쪽으로 넘어온다.이제 집안 일과 상황 적응력도 어느 정도 갖추었고 익숙해져 있다. 중요한 사실은 시어머니에게 친손자, 친손녀를 안겨 줬다는 뿌듯한 사실에 기인한다. 그것도 친탁을 한 친 손주를 낳았을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아이를 핑계로 사소한 집안 행사에도 빠질 수도 있다. 아이는 자주 아플 수 있고, 자주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예전의 고부 갈등 상황은 드라마 속에서 야 볼 수 있는 특수 상황으로 여겨진다. 비록 감정의 앙금은 존재하더라도 외형상은 그렇게 보인다. 며느리들의 발언권이 강화되었으며,무조건 적인 복종이나 굴복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신세대 며느리의 당당함과 자기주장이 강해진 이유도 있다. 여기에 또한 시어머니들도 예전같이 그러하게 행동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그녀들의 노력도 눈물겹다. 어쩌면 그녀들이 과거 누렸던 당연하게 여겼던 지위와 권위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자각했을 수도 있다.

 

좋은 시어머니 되기

 

두 며느리를 준 성우 송도순의좋은 시어머니 되기의 원칙은 이를 잘 이야기해 주고 있다. 그녀는 지질한 시어머니가 되지 않기 위해 며느리 학도 공부했다고 한다. '두고 보지 말자' , 그냥 방관하고 내버려 두며 실수하기를 하길 기다리거나, 또는 마음에 담아 두고 언젠가 기회를 엿보는두고 보자의 생각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궁금해하지 말자' 아들이 아침은 잘 먹고 다니는지, 김치는 떨어지지 않았는지? 손주는 아프지는 않은지? 궁금해 하면 무언가 해주어야 하고 간섭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겠다는 결의 라고 한다. ‘가르치려 하지 말자인생을 살면서 보니까그때는 내가 이럴 걸이런 게 많다는 것이다. 그걸 며느리한테 가르쳐주고 싶어도 그러면 안 된다고 한다. 그건 지적이고 명령이고 혼내는 거라고 한다.  

 

 

즉 동기는 선해도 무언가 가르치려고 할 때, 실수나 잘못을 지적해야 하고, 명령하고, 혼내는 자신에 대한 반성을 한다는 것이다.

 

꼰대 시어머니에서 스스로 탈출하려는 건전한 생각의 전환으로 보인다. 유교 전통과 연공으로 부여받은 가족 서열 지위를 내려놓는 노력도 보인다.  두고 보고, 궁금해 하고, 가르치려 하는 것이 며느리 입장에서는 가장 견디기 힘든 시어머니의 행동과 말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어머니들도 과거에 힘들었던 것들이, 그들의 시어머니가 했던 그런 행동이었기에 말이다. 신세대 며느리는 시간이 흘러 시어머니가 된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하다. 그것도 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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