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를 연상하면 직장 상사가 먼저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전형은 '미생' 드라마의 마 부장이다. 계약직 인턴사원 장그래의 모습과 함께 '미생'을 장식한 이가 바로 꼰대 상사 끝판왕인 마 부장이다.
1. 미생, 직장인의 애환
현장감과 직장인의 애환을 그린 최고의 드라마로 ‘미생’을 꼽는다. 미생에는 직장 생활을 그린 기존 드라마들과 비교할 때, 없는 것과 있는 것들이 있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성층권 재벌들과 그들의 자식들이 근무하는 정체불명의 기획실이나 마케팅 팀이 없었다. 잘 생긴 슈퍼맨 실장님이나 불쌍한 신데렐라나 콩쥐도 없었다.
허상의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닌, 현장의 땀 냄새와 사람 내음이 잘 비벼진 직장인들의 이야기는 있었다. 있음 직한 우리의 모습과 군상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내가 10년 동안 근무했던 ㈜ 대우 (현재 대우 인터내셔널)가 드라마의 배경이고, 꽤나 전문적인 종합상사 이야기가 있었다. 원작자인 윤태호는 사전 취재 에만 3년의 시간을 썼다고 한다. 그런 만큼 상당 수준의 전문 무역 용어와 있음 직한 사례도 있었다.
가장 가슴 울림을 주었던 것은 계약직 인턴 사회 초년생인 장그래의 모습이 바둑 용어인 미생 (未生)으로 잘 표현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생이라 함은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있지 않음 또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 그 2음절 단어가 비정규직 직장인들의 삶을 상징하는 고유 명사가 되었다.
모든 것이 “그래 그래서인지”, ‘장그래’라는 인물의 시각으로 관찰된다. 7살 때부터 오로지 프로 입단을 목표로 했으나 입단에 실패한 검정고시 출신 미생인 ‘장그래’. 그는 일종의 낙하산으로 종합상사인 ‘원 인터내셔널’에 입사한다. 그 후 2년 동안의 좌충우돌 인턴 생활은 직장인들의 가슴을 꽤나 후벼 파기도 했다. 장그래 이외에도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 또한 실감을 더해 주었다.
2. 마왕 꼰대- 마 부장
그 인물들 중에 마왕 꼰대에 가장 걸맞은 인물은 마 부장이다. 가장 악역에 어울리는 배역이다. 미생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그의 프로필을 살펴보자. 나이 48세 자원팀 부장. ‘안영이의 상관’. 겉도 속도 마초의 전형. 기본적으로 ‘여자 (계집애)가 어디서’ 하는 마인드를 가진 불량 가부장적 사고의 소유자. 능력 있는 여자는 ‘곧 예의 없이 대가 센 여자’로 바로 치환시켜 버리는 단순한 중년 마초적 습성 때문에 ‘안영이’와 여자 차장인 ‘선차장’을 보는 눈이 곱지 않다. 마 부장의 진수는 청국장 수출 관련 직원과의 대화이다. 한 직원이 청국장 수출 관련 마 부장에게 결재를 득하러 갔다가 겪는 에피소드이다. “마 부장님이, 마 부장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요” 라며 상사인 선차장에게 하소연한다. 드라마 속 대사를 그대로 옮겨본다.
마 부장: 야 이거 말이야. 미국 수출하려면 당연히 인증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직원: 예? 무슨 인증?
마부장: 먹을 거는 말이야, 미국 뭐냐? FTA 뭐, 뭐냐, 그거 있잖아 그거. 아이 씨, 왜 이렇게 생각이 않나냐. 그거 있잖아 (화를 버럭 낸다). 그거, 그거. 몰라? 말을 못 알아들어. (서류를 던진다) 가서 찾아봐
직원:FTA면 한미 FTA 말씀하시는 겁니까? 거기서 무슨 인증을?
마부장:자유 무역 협정 말고. 이렇게 말귀도 못 알아듣는 새끼가 어떻게 원인터에 들어왔어. 너 학교 어디 나왔어. 이러니까 대학도 보고 뽑아야 된다는 거야. 너 선차장 팀이지? 이래서 여자가 팀장인 팀은 안된다 말이야. 찾아. 찾아보라고.
선차장: 청국장 수출에 꼭 받아야 하는 인증이 있습니까? 아니면 FTA 조건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마부장: 하~ 그 조건인가 뭐 인증인가 있잖아.
선차장: 그 뭐에 들어가는 그 뭐가 대체 뭔가요?
마부장: 그 뭐 식품 인증받아야 하는 거 아냐. 그런 거 생물 수출하려면.
선차장: 생물이요? 청국장이 무슨 오징어입니까? 꼴뚜기입니까? 검토하셨으니까 아시겠지만, 기본적으로 제조 공정도, 성분 분석표, 농약 잔류물 검사, 항산화제 사용여부, 장유내 대장균 검사까지 모두 다 마친 청국장 완제품입니다. 공장 확인에 견본 검사까지 다 받았는데, 도대체 무슨 인증을 또 받고 무슨 조건을 또 채워야 하나요? 혹시 그 뭐가 기억나시면 그때 그 뭐에 대해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지요. 일단 저희 팀은 일정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마부장: 허~ 야, 저게 여자라고 봐줬더니 말이야. 야 너, 니 남편에게 고맙다고 해라. 같은 여자랑 같이 살아주니까.
선차장: 성희롱 2번이면 감봉만으론 그치지 않을 텐데요.
마부장: 뭐, 너 뭐라고 했어? 야, 야 저~~~
3. 마부장 -뭐부장
‘마 부장’ 이라기보다는 더 어울리는 캐릭터이다. 꼰대의 모든 말과 행동, 거의 모든 요소들을 완비한 인물이다. 우선 그는 모든 것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고 성장을 거부한 네버랜드에 사는 ‘피터팬’은 결코 아니다. 과거에 식품 수출에 필수적이었던 인증을 지금은 그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FDA 인증 (미국 식품 안전국)을 FTA로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한 조각 경험에 기초하여 그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개떡 같이 말하더라도 소 떡이나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개떡은 개떡일 뿐이다. 거시기 부장이 아니신 게 다행이다. 본인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는,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다고 ‘악문선답’을 요구한다. 그리고 직원에게 대학을 어디 나왔냐고 묻고, 대학을 보고 뽑아야 한다고 비하한다. 아마 마 부장은 소위 일류 대학 출신 일거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성차별 및 여성 비하 발언이다. 오류 인식이 자기 확신으로 변하는 3 단계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아닐 거다’에서 ‘반드시 아니다’를 거쳐 ‘아니면 나를 때려죽여라’고 하고 있다.
책임 회피형으로는 영업본부 김부련 부장도 있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추진한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지 않는다. 그러자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본인이었다는 것을 보고서에서 지우라고 한다. 오 차장의 내부 고발로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부정 사건으로 결국 계열사로 전보된다. 사실상 옷을 벗게 되는 그였기에, 그의 뒷모습은 외롭게 보인다. 그래도 떠나는 마지막 날, 내부 고발자인 오 차장에게 홍삼을 건네며 몸 챙겨가며 일하라고 한다. 그래도 김 부장은 마 부장보다는 낫다. 그는 애잔 함으로 직원들의 따뜻한 배웅을 받을 수 있었다.
전해 들은 전설적인 한 대기업 전무의 이야기다. 그분은 항상 모든 결재 서류에 연필로 사인을 했고, 일이 잘 진행되지 않으면 결재 서류를 갖고 오라고 하여 본인의 결재 사인을 지우개로 지웠다고 한다. 자신의 결재 승인 흔적을 없애고 발뺌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직원들에게 통쾌한 복수를 당했다고 전해진다. 그 일을 당한 직원들은 결재 후 바로 투명 테이프를 붙였다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이야기이다. 그런 시절도 있었다.
4. 미생 속의 악인 꼰대들
미생 드라마에는 꼰대계의 마왕 격인 마 부장 외 여러 명의 ‘상꼰대’ 들이 등장한다. 마 부장이 언어폭력의 황제였다면, 회사 돈을 빼돌리는 ‘박 과장’은 가히 영의정급이다. 성희롱을 일삼으며,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중고차 수출 관련 커미션을 빼돌리는 그의 모습은 측은 함을 떠나 범죄인의 모습이다. 그도 한 때는 잘 나가는 상사 맨이었다. 파면된 사제를 보는 듯하다.
나머지 악인 역할의 캐릭터는 모두 젊은 꼰대들이다. 본인이 처리해야 할 일들을 신입들에게 떠맡긴다.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신입 사원에게 술값을 떠 넘기고, 하청업체를 하인 부리듯 부리고, 뒷돈을 받는, 신입사원을 만만한 존재로 부리는 대리, 과장 들이다.
극 중의 인물들이 지금도 존재할까? 확실한 건 과거에는 분명히 있었다. 이런 곤댓짓들이 요즘에도 가능할까? 이러한 상사가 버텨나갈 수 있는 ‘뭐 부장’을 용인할 조직이 현재 과연 있기나 할까? 착한 주인공과 악인의 극단적 대비로 극적 효과를 거두고자 한 작가의 상상력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상사가 존재하고 있음에는 한편 동의하기도 한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후배들은 그러하다고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장 어려워하는 일을 능숙하게 해낸다. 다른 상사들이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달란트가 있다. 본인을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남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외딴 고도의 오징어나 꼴뚜기가 되어간다.
#미생 #끝판왕꼰대마부장 #미생드라마 #장그래 #